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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

대상노무법인 김경락 노무사, "애사심이란 무엇인가?"

by 7 investment 2021.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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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 지급 때마다 애사심(愛社心)을 시험받아요.” 전자대기업 L사 직원들의 호소다.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 게시판에서 터져나온 성과급에 대한 불만은 결국 책임질 처자식이 없어 총대 멜 수 있었다는 위원장의 용기로 이어져 ’전자대기업 L사는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을 탄생시켰다.

서른 살 남짓한 청년이 필자의 노동조합전문 노무법인에 찾아와 IT회사를 다닌다고 했고, 노조 설립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근로자 수를 물으니 사무직 노동자만 3만여 명이란다. 조그마한 IT 스타트업을 예상했던 터라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들어보니 ‘전자대기업 L사'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의 위상과 조금은 다른 대우를 받고 있었다.

성과급이란 무엇인가?
성과급의 본래 목적은 그 성과의 달성에 기여한 이들에 대한 합리적 보상이며, 궁극적으로는 ‘임금 공정성’의 실현이다. 그런데 성과급 지급 때마다 무려 ‘애사심’을 시험받는다니. 전자대기업 L사의 임금 체계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기본 연봉은 근로자들의 예측 가능성, 생활의 안정성과 관련된 것으로 회사의 경영 성과와는 직접 관련돼 있지 않기에 이를 무작정 높이는 것은 회사 측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L사 한 임직원이 블라인드 게시판에 올린 임직원 연봉 분석 관련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국내 매출 3위를 기록한 전자대기업 L사의 과장 초임(9년 차)의 연봉(성과급 제외)은 매출 상위 13개 기업 중 최하위 수준이라고 한다. 이렇게 낮은 연봉을 수용하고 있던 L전자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성과급에 대한 기대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L전자는 지금껏 영업이익이 많이 발생하면 매출이 좋지 않다며, 실적이 좋아 성과급을 많이 지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3년간의 평균 성과를 기준으로 하자며 번번이 말을 바꿔왔고, 타 대기업 대비 결코 높지 않은 기본 연봉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존재하는 성과급 제도가 오히려 공정성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었던 셈이다. 결국 2020년 3조2,000억원의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 달성이라는 호재는 오히려 L전자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임금과 성과급에 대한 내재적인 불만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만 것이다.

MZ세대란 무엇인가?
MZ세대에게 헌법 제 33조에 명시된 이른바 ‘노동3권’ 및 ‘노동조합’이란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한자리에 모여 땅바닥에 주저앉아 목 터져라 노동가요를 부르는 투쟁이 아니다. MZ세대는 집단이라기보다는 개인이며, 그 개인들이 모여 ‘단결’하는 데는(그들은 단결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뉘앙스를 그리 환영하지 않을 듯하다) 합리적 명분이 필요하다. 발단은 2020년 경영실적에 대한 성과급이며, 근본적 원인은 지나치게 낮은 기본급, 전자대기업 L 계열사 내부에서의 불합리한 차별이었다. 이는 MZ세대가 수호하고자 하는 ‘공정’의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이들은 기꺼이 모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자 ‘단결’한 것이었다.

회사와 근로자는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가?
바야흐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사회다. 연공급은 성과급으로 대체됐고, 기본급이 꾸준히 상승한다고 한들 그 정도로는 서울에 집 한 채 갖기 어려운 시대이다. 회사와 근로자는 이제 더 이상 삶의 전 영역에 걸쳐 무언의 약속을 주고받지 않는다. 서로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으며, 근로계약상 혹은 단체협약상의 명시적 문구에 구속되어 근로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서 임금을 지급할 뿐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2021년 전자대기업 L사에 설립된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애사심이란 무엇인가.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직업의 시대를 넘어, 이제는 한 개인이 평생에 걸쳐 갖게 될 직업이 4~5개일 것이라는 시대에, 결별이 예정된 회사와 직원은 서로를 어떤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

추측건대, 핵심은 ‘공정함’이다. ‘바른 마음’의 저자인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공정함’이 인간이 가장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도덕적 가치 중 하나임을 역설한 바 있다. 어느 정도로 성과급을 배분해야 하며, 임금 수준은 어떻게 결정해야 공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할 수 있겠으나 그 가치에의 추구는 MZ세대가 회사를 사랑하기 위해, 회사가 근로자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그 과정을 통해 회사와 근로자는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는 아름다운 만남 동안 서로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주역은 MZ세대임이 분명한 바, 그들은 필자의 세대에서 갖지 못해 이루지 못한 ‘공정함’의 기치(旗幟)를 보다 정제된 방식으로 실현하길 기대해 본다. 그들의 애사심은 새롭게 정의될 것이다. 글 / 대상노무법인 김경락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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